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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세이 1297 315 2017.06.09
작성자 : 이형근 첨부파일 :        
행복에세이                                                             
                                                                      
행복이란 움직이는것 같다. 살아 숨쉬는 행복지수에 나의 점수를 매겨보라면 솔직히 망설여진다. 결코 지금으로서는 후한 점수가 나올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자식이 커가고 어머님이 계시며 형제자매가 있기에 불행하다고 할 수 없지만 맘편한 하루하루가 아니기에 그럴 것이다. 

나는 도농이 공존하는 도시근교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사를지어 우리 6남매를 키우셨다. 도시와 가까이 있기에 채소를 재배하여 새벽시장에내다 파셨다. 채소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사철 비싸지는 않지만 장사가 그러되로 되었다.하지만 농사로써 6남매를 키우기엔벅찼던것 같다. 

아버님은 때때로 농한기에 화투놀음을 하셨다.그시대에는 많은 가장들이 즐겼지만 번번히 딸들에게 그리고 어머님에게 들키시어 곤욕을 격곤하셨다.하지만심성이 악하지 않은 분이기에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오곤 하셨다.약주도 즐기셨다.그러나 워낙 몸이 약하셨기에 술을 이기지 못하셨는지,술이아버님을 이겨 버렸는지 술에 취한 그분의 모습은 약해 보였었다. 

그시절 아버님의 행복지수는 얼마정도였을까 ?

감히 난 점수를 매길수도 매기고 싶지도 않다. 너무 가슴아픈 과거로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시절을 생각해 보면 난 정말 100점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며 생활하는 아이였다.학교생활도 크게 뒷쳐지지 않았으며 언제든지 뛰놀수 있는 뒷동산이 있고 바닷가가 있어 놀러 나갈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맘에 맞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의 유연기는 정말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것 같다.다시 생각하면 그 행복속에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그걸 이제와서 생각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런데 그 많은 희생을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하신 아버님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제는 그 분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에 감히 여쭈어 볼 수도 없다.그저 나의 상상으로만 점수를 매길 수 밖에 없다. 

아버님은 나처럼 고독과 함께하는 성격이었던것 같다. 묵묵히 일을 해오시며 차분하게 마무리를 하셨던 그분을 생각하면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만약 그분이 나를 낳으셨기에 나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면 스스로의 가는 길에 자신의 행복을 잠시접어 두고 생활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희생을 감수 하면서 힘들지만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다고 감히 나는 말 할 수 있다. 지금의 잠시 고통을 이겨내며 나중에는 좋은 세상이 올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세상을 맞기전에 그분은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그리고 그분은 나를 위하는 마지막 말을 남기시고 가셨다는데 불효자인 난 그분의 임종을 함께하지 못함을 지금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후회하고 있을 뿐이다.

그분의 그같은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라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것 아닌가 그 행복의 점수가 얼마가 되든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행복의 점수를 살아숨쉬는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비록 내가 지금은 부초처럼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예전처럼 만점을 향한 나의 각오가 확고 하고 긍정적 사고로 살아간다면 행복은 늘 곁에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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